★ 이름 : 김범수
★나이 : 1966년생 56세
★ 출생 및 환경 서울시 성동구에서 출생.
★ 학력 :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 졸업
★ 가족 : 부인 형미선씨와 결혼하여 아들1, 딸1을 두었습니다.
★ 재산 : 현재 재산이 약 10조원으로 추정되며, 국내 4위 부자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할머니를 포함한 8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호기심이 많은 김범수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백과사전을 보는것을 좋아했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김범수 회장은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의 발상의 전환에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요.
이후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놀이로 즐기기 시작합니다.
또래 친구들에게 20~30까지 더하는 게임을 하는식으로 게임을 하고
문제를 가장 빨리 푸는 친구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외에도 백과사전을 뒤져 다양한 퀴즈를 만들고 반에서 퀴즈대회를 열기도 하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김범수 회장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이래라 저래라하며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자기 일은 늘 알아서 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방임형 교육철학을 가졌던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성취해가는자기주도형 삶을 살게된 것인데요.
스스로 선택에 의해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면서 내공을 쌓을 수 있게 기회가 마련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때부터 김범수 회장의 창업가 정신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놀때는 누구보다 재밌게 잘 놀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때부터는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정하고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고 합니다.
남들과 같이 친구들과 놀고 싶고, TV도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기에 아예 방과 후
집에 오면 바로 잠을 자고 한밤중에 일어나 공부를 한것입니다.
김범수는 1년 재수 끝에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진학하게 됩니다.
기계나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던 김범수 회장은 원했던대로 공학도가 됩니다.
게임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서 게임왕으로 불렸고 술자리에서도
끊임없는 게임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고 합니다.
서울대 같은과 대학원으로 진학한 김범수는 1991년 논문을 준비하던 중 PC 통신 기반 그룹채팅을 경험하게 되고 컴퓨터 분야에 밝을 미래를 보게 됩니다.
컴퓨터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던 그는 1992년 졸업과 함께 삼성SDS에 입사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원없이 컴퓨터를 만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삼성SDS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고가였던 컴퓨터 장비를 접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직 컴퓨터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90년대 초반C++과 같은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쳐줄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요.
머지 않은 미래에 윈도우가 대중화 될것이라는 선배들의 말을 받아들여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익히게 됩니다.
네이버의 이해진 회장과 동기로 입사한 그는 1994년 유니텔 개발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유니텔은 1996년 1월 론칭된 이후 1998년에는 하이텔을 제치고 천리안에 이어PC통신 2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유니텔 팀에 있다보니, PC통신시장의 흐름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고, 90년대 후반,
그 흐름이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바뀌고 있음을 체감하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인터넷과 게임을 결합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인터넷 환경에 게임을 적용하면 대 유행을 할것이라 판단한 것이죠.
하지만 김범수의 아이디어는 대기업 조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998년 창업을 위해 사표를 제출하게 됩니다.
김범수 회장과 뜻을 같이한 대학 선후배 5명이 오피스텔을 빌려 모이게 됩니다.
창업아이템으로 인터넷 게임이라는 큰 방향은 잡았지만 아직 프로그램 개발은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처음엔 장기, 바둑과 같이 일상에서 인기가 있었던 게임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수익모델이 없었습니다.
결국 3명은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일단 생활과 게임 개발은 해야하니 안정적인 수익모델이 필요했는데요. 어차피 게임을 만들 것이고, 돈도 벌어야 하고 최신 게임의 흐름도 볼 수 있는 PC방을 차리기로 합니다.
500만원의 본인 자금에 친척들로부터 2억 4천여 만 원을 빌려 사업을 시작합니다.
80평 규모에 50여대의 컴퓨터로 당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고 하는데요.
다행이 PC방은 성공적이었습니다.
PC방이 막 뜨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이죠.
PC방 한쪽 구석에 개발실을 만들고 낮에는 PC방 운영에 밤에는 프로그램 개발에 매달렸는데요.
한게임 설립후에도 한동안은 PC방 사업으로 번 돈을 한게임 개발에 투자하는 방식을 지속합니다.
1년여 집중 개발 끝에 1999년 말 한 게임 무료 서비스가 시작되는데요.
김범수 회장은 게임을 알리는데 PC방 운영을 위해 개발한 관리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합니다.
전국 PC방에 관리프로그램을 무료로 깔아주는 대신 한게임을 PC방 컴퓨터 초기화면에 띄우기로 한 것이죠.
당시 한게임의 임직원들은 PC방 사장님들의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전국 PC방 컴퓨터화면에 한게임을 띄우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었다고 합니다.
2007년 시가총액 10조 원대에 이르게된 NHN을 나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요.
김범수 회장은 한게임과 NHN 성공의 주역이지만,
기업의 수장으로 편안한 삶을 살기 보다는 다시 창업가로 돌아오고 싶었다고 합니다.
당시 스톡옵션으로 받은 NHN주식을 매각한 345억 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이어졌는데요.
1년 넘게 준비 했던 SNS서비스가 연달아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잊혀졌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요.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한게임이 탄생했다면,
이번엔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김범수 의장은 2009년 모바일 서비스 개발자를 모집하며 모바일용 앱 시장에 집중하게 됩니다.
2010년부터 카카오톡 서비스를 선보였는데 1년만인 2011년 가입자수 1000만 명을 넘게 됩니다.
카카오톡이 그때까지 모바일에서는 없던 새로운 서비스였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카카오톡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다른 유료 메신저나
문자서비스를 제치고 국민들의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네이트온과 같은 기존의 PC 기반 메신저들도 뒤이어 모바일용
앱을 내놓았지만 카카오톡의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카카오는 카카오게임, 카카오뱅크, 카카오택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성공시키고 있고 2014년 다음을 인수하면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카카오의 기업 가치는 2020년 현재 28조 원으로 시가총액 기준 국내 8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내꿈은부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민 (룰라) 명언, 연예인 명언,힘들고지칠때 (0) | 2021.07.06 |
---|---|
정주영명언, ceo명언, 부자명언 ,억만장자 ,한국부자,부자순위 (0) | 2021.06.29 |
알리바바 CEO 마원 명언, 부자명언, 중국부자 (0) | 2021.06.16 |
아마존 CEO 제프베조스 명언 ,부자명언,재산2위,억만장자 (0) | 2021.06.11 |
일론머스크명언,부자명언,부자되는방법,테슬라,도지코인? (2) | 2021.06.08 |